어른아이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한 달 동안 한국사 준비와 취업준비, 직업훈련으로 정신이 없었다. 5년전에는 중급을 봤는데, 올해는 고급으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중급은 임용 빼고는 별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취업과 관련해서 고급으로 도전했다. 한 달 동안 매일매일 강의를 듣고 정리하고 기출 문제를 풀었다. 사람들이 왜 굳이 2주만에 끝낼 수 있는 한국사를 한 달을 가까이 보고 있냐고 했다. 그냥 한국 사람이니까 좀 더 열심히 듣고 싶었다.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말이다. 예전에는 임용을 위해서만 빨리 공부를 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집중해서 들었다. 듣다 보니 일제강점기부터 화가 나고 현재의 정치는 조상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이용했다는 것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선생님을 꿈꾸기 전에 다큐멘터리 PD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다큐멘터리를 보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내는 PD의 능력이 대단해 보였다. 특히 사회의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그들로 인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PD가 되고 싶었다. 고3 입시에 실패하기 전까지 그랬다.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면접에서 탈락하고, 그 좌절감에 수능을 대충 치르고 집 앞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부모님의 실망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내 꿈을 응원해준 분들이지만, 명문대에 보내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부모님이기에 집 앞에 있던 대학에 들어간 것에 실..
https://news.v.daum.net/v/20190505201502606 '어린이날' 극단적 선택.."생활고에 사채까지" [뉴스데스크] ◀ 앵커 ▶ 오늘 새벽 경기도 시흥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가족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네 살과 두 살 된 남매도 함께 숨져 더욱 안타까웠는데요. 이문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경기도 시흥시의 한 농로. 오늘 새벽 이곳에 세워져 있던 차 안에서 34살 손 모 씨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손 씨 부부뿐만 아 news.v.daum.net '어린이 날 극단적 선택' 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좋은 날, 행복한 날에 떠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선택을 한 일가족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느껴..
짐을 싸서 어제 부모님과 본가로 내려왔다. 오늘은 하루종일 짐 정리를 했다. 버려야 할 책들이 7묶음이나 나왔다. 그래도 책꽂이에는 아직 책이 가득하다. 임용을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전공책 문제집 그리고 지도서와 인강을 보았다. 버려야할 프린트들도 많았다. 뭐가 그리 아쉬워서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을까? 오늘은 시원하게 책을 정리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의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될지, 아니면 더욱 힘들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앞으로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더 행복하길.. 내 삶 속에서 더 이상의 눈물보다는 웃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정신적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계약 만료 후 15일째 백수생활.. 그 동안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다. 너무 쉼없이 달려왔는지 일을 안하니까 좀이 쑤신다. 같이 일했던 선생님이 이제 고작 15일째인데 좀 쉬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퇴직 후에 여행도 다니는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냐고 했다. 맞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좀 쉬어야지,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했다가 아니야 얼른 일 구해서 돈을 벌고, 그리고 하고 싶은거 찾아야지 .....'라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정신적으로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 일을 하지 않으니까 내가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었다. 집안의 이불이란 이불을 다 빼놓고 하나씩 이불을 빨고, 손수 각 방을 물걸레질을 하고 있고, 먼지를 털고 있고, 부..
1차 서류 통과로 면접을 다녀왔다. 첫 번째 면접 지원자로 들어갔다. 너무 떨렸지만 5명의 면접자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대답을 했다.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만큼 준비한 만큼 대답했다. 사실 첫 번째 라는 순서에 압박이 너무 컸나보다. 머리속이 하얗게 되었다. 4명 중에 내가 될 수 있을지는... 연락을 받았다. 합격 순위 2순위이고 1순위 합격자가 하지 않으면 나중에 연락이 갈거라고... 착찹했다. 좀 만 더 잘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였지만 그래도 욕심이 났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였기에 더 욕심이 났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불합격했다고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걱정이 없다고 했다. 나를 믿는다고 했다. 학교다닐때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
한 송이 꽃송이가 떠나버린 날 세차게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바람속에 꽃송이는 휘날렸지 아픔도 눈물도 많았던 그 꽃송이의 날개짓은 아름답다 못해 찬란했다. 꿈을 짓밟혀 버린채로 떠나갔지만 그 누구보다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기억속에 남아 사람들의 기억 속 너머에, 그 곳에서는 아프지말기 사람들에게는 악인이 아닌 여인으로 남아주길 그 곳에서는 꿈을 이루길 행복했던 웃음속에 담겨 있던 눈물버려 아름따위는 저 멀리 사라져버려 슬퍼하지마 그대곂에 또 다른 꽃송이가 있기에.
1차 서류합격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떨어지고 또 떨어졌었는데... 막상 연락을 받고보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 꿈이 아닌 곳을 지원했기 때문일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거라고 지원해보라는 전 직장의 상사의 말에 지원했던 곳이었다. 사실 걱정이다. 합격해도 내 역량으로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말이다. 현실과 이상은 멀고도 멀었다. 대학 전공을 살리려고 학교 다닐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2학년때부터 전공스터디를 하고 지금까지 전공에 매진했다. 그런데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나를 더 이상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현실과 타협했다. 근데 그 현실도 무척 힘들다. 나에게 마주한 현실은 계약직과 2년의 시간, 야근 등의 차디차고 아픈 곳이었다. 부디 내가 이 현실에서 잘 버텨..